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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콘솔/1970

아타리 2600 [ATARI 2600 | 1977]

by VGameLine 2024. 6. 13.

 

 

CPU 1.19 MHz MOS Technology 6507
Audio 

Video processor
Playfield resolution: 40 x 192 pixels (NTSC). 

Uses a 20-pixel register that is mirrored or copied, left side to right side, to achieve the width of 40 pixels. Player sprites: 8 x 192 pixels (NTSC). 

Player, ball, and missile sprites use pixels that are 1/4 the width of playfield pixels (unless stretched). 

Ball and missile sprites: 1 x 192 pixels (NTSC). 

Maximum resolution: 160 x 192 pixels (NTSC). 

Max resolution is only somewhat achievable with programming tricks that combine sprite pixels with playfield pixels. 128 colors (NTSC). 

128 possible on screen. Max of 4 per line: background, playfield, player0 sprite, and player1 sprite. Palette switching between lines is common. 

Palette switching mid line is possible but not common due to resource limitations. 

2 channels of 1-bit monaural sound with 4-bit volume control.
ROM 4KB
출시일 북미:1977년 09월 | 유럽:1978년 | 프랑스:1982년 | 일본:1983년 10월 (아타리 2800으로 출시)
수명 1977년 ~ 1992년

 

 

아타리 2600은 아타리가 개발하고 생산한 가정용 비디오 게임 콘솔이다. 1977년 9월 아타리 비디오 컴퓨터 시스템(Atari VCS)으로 출시되어 1976년 페어차일드 채널 F와 함께 처음 사용된 포맷인 스왑 가능 롬 카트리지에 저장된 마이크로프로세서 기반 하드웨어와 게임을 대중화했다. VCS는 두 개의 조이스틱 컨트롤러, 연결된 패들 컨트롤러, 게임 카트리지와 함께 번들로 제공되었습니다(처음에는 컴뱃, 나중에는 팩맨. 시어스는 이 시스템을 텔레 게임 비디오 아케이드로 판매했다. 아타리는 1982년 11월 아타리 5200 출시와 함께 VCS의 브랜드를 아타리 2600으로 변경했다.


아타리는 아케이드 비디오 게임을 만드는 데 성공했지만, 개발 비용과 제한된 수명으로 인해 CEO 놀란 부시넬은 프로그램이 가능한 가정용 시스템을 찾게 되었다. 1975년 말 모스 테크놀로지의 첫 번째 저렴한 마이크로프로세서가 이것을 가능하게 했다. 콘솔은 아타리의 자회사인 사이안 엔지니어링에 의해 스텔라라는 코드명으로 프로토타입이 제작되었다. 프로젝트를 완료할 자금이 부족했던 부시넬은 1976년에 아타리를 워너 커뮤니케이션즈에 매각했다.

 

 

아타리 2600 1977 TV 광고

 


아타리 VCS는 1977년 2KB 카트리지에 9개의 저해상도 게임을 탑재하여 출시되었다. 이 시스템의 첫 번째 킬러 앱은 1980년 타이토의 아케이드 게임 스페이스 인베이더(Space Invaders)의 가정용 버전이었다. VCS는 널리 성공하여 액티비전 및 기타 타사 게임 개발자의 설립과 콘솔 제조업체 마텔(Mattel) 및 콜레코(Coleco)와의 경쟁으로 이어졌다. 게임은 액티비전의 핏폴(Pitfall)과 같이 시스템에서 설계된 것보다 훨씬 더 발전된 비주얼과 게임 플레이로 출시 게임의 스토리지 크기의 4배 이상을 사용하게 되었다.

1982년까지 아타리 2600은 북미에서 지배적인 게임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인텔리비전과 콜레코비전과 같은 다른 콘솔과의 경쟁과 아타리 경영진의 잘못된 결정은 시스템과 회사의 평판을 모두 손상시켰다. 특히 아케이드 게임 팩맨(Pac-Man)의 포팅 버전과 이티(E.T. the Extra-Terrestria)가 큰 문제였다. 팩맨은 2600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게임이 되었지만, 아케이드 버전에 비해 열세로 패닉에 빠졌다. 이티도 휴가철 쇼핑 시즌을 위해 서둘러 시장에 출시되었고, 마찬가지로 패닉에 빠졌으며 상업적인 실패가 되었다. 두 게임과 제3자 삽시간대의 과잉은 콘솔 시장에서 아타리의 관련성을 종식시키는 요인이 되었고, 1983년 비디오 게임 붕괴의 원인이 되었다.

워너는 1984년 아타리의 홈 사업부를 전 코모도어 CEO 잭 트라미엘에게 매각했다. 1986년, 트라미엘 아래의 새로운 아타리 코퍼레이션은 더 저렴한 버전의 2600과 역호환형 아타리 7800을 출시했지만, 1985년 닌텐도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의 출시로 업계 회복을 이끈 것은 닌텐도였다. 아타리 2600의 생산은 1992년 1월 1일에 종료되었으며, 전체 수명 동안 약 3천만 대가 판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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